01편 시리즈
※ 이 글을 읽기전에…
다름이 아니라.. 요즈음 내가하는 사업이 좀 한가해져서 즉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예전에 취미로 했던 글이나 써서 손목이나 움직여보려 한다.
북한역사에서 "8월종파사건" (일명) "8월 사건" 은 한국의 일반인분들도 한번쯤은 들어는 봤을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사학과'를 3학년 때 중퇴를 했는데 그 이후 우연히 조그만 사업을 하게 되었으며 현재도 하고 있다.
인연이 그래서 그런지, 내가 역사학 계통 지인분들이 많다.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분들이나, 동창이나 선후배 교수들, 북한학과 교수분들 또 북한학 전문가분이나 연구소의 연구원분들등 이 분들하고 술자리나 개인만남등을 통해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접했고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또 미국대학교의 동북아학과 교수분들이나 세계사 교수분들의 지인들이 있는데 우연찮게 그 분들의 북한의 학술적 이야기나 논문등을 통해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으며, 또한 탈북자분들의 "8월종파사건" (일명) '8월사건'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이 '8월종파사건'의 역사적 내막을 일반분들이 겉핧기식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 아니라 오직 팩트에 근거해서 글을 올려보려 한다.
관심있는분들은 눈요기로 읽어보기 바란다.
◇ 8월종파사건 [김일성은 어떻게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되었나]
"8 월 사건"의 성격과 관련하여 당내의 합법적 인 정치적 투쟁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선, 나중에 노동당이 군사력도 경찰력도 손에 쥐지 못한 야당을 유죄 판결했을 때 묘사 한 것처럼 "군사 쿠데타"가 아니 었는데 어떻게 무장 쿠데타를 조직하고 실행할 수 있었을까요?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CPSU)) 소집과 스탈린의 인격 숭배에 대한 비판은 북한에서 김일성의 통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에 조선로동당(이하 노동당)은 대회를 보이콧했습니다.
'탈스탈린화'에 자극을 받은 불만을 품은 노동당 간부들은 그해 여름 김일성의 소련, 동유럽, 몽골 방문을 기회로 삼아 세력을 결집하고 반대파를 결성하여 정치 투쟁을 통해 김일성을 비판하고 심지어 퇴진을 강요할 준비를 했다. 김일성에 대한 비밀 정치 투쟁이 한창이던 7월 19일 김일성은 중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참고》
지면 관계상 '김일성의 권력 승계'는 '당내 반대파 제거', '8월 사건', '중국과 소련의 공동 개입에 대한 대응', '마오쩌둥의 대북 접근법 전환', '북한에서 지원군 철수' 등 5가지 주제로 시간순으로 구분하여 이해 공부하시면 좋습니다.
0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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