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편
■ 북한 김일성의 실제 출생지 추적
해외 학자, 연구자들이 종종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 창시자 김일성의 삶의 한 측면은 그 사람의 어린 시절입니다.
1945년 집권 후 김일성의 행적은 물론, 만주에서 항일 게릴라(빨치산) 활동과 소련 붉은 군대 복무에 대해서도 중국, 일본, 소련 문서등에서 이제는 많이 공개화 되어서 상당히 자세하게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 게릴라 부대를 창설하기 전의 시기를 다루는 소식통은 거의 없습니다.
우선, 당시의 출처는 매우 적을 수 있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3·1운동에 참여했다가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일본 경찰 기록에 항일운동가로 기재돼 있다.
이 기록들은 김형직의 3·1운동 참여와 함께 그의 재산도 밝혀준다. 1925년 현재 김씨 일가의 재산 가치는 1000엔 안팎으로 만주에서 2년 동안 일한 평균 임금보다 약간 높았다.
이러한 동시대 기록 외에도 김일성 가족을 아는 사람들의 증언도 있다. 아마도 여기서 핵심 증인은 100세가 넘어서 더 유명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 이용상 시인일 것이다.
김형석은 어린 시절 김형직 가문에 대해 많이 들었고, 이용상은 회고록 삼색 군복에서 김일성의 남동생 김영주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조선총독부 정무국 기록에서 김형직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띈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그 책을 보면 둘째인 김철주가 일제와 싸우다 20살로 전사한 것과 달리 셋째 막내 김영주가 일본군 통역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그의 우수한 일본어 능력을 1945~1946년 김일성 가족 하인으로 근무한 고바야시 가즈코의 회고록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출처는 1960년대 초 북한 서적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시기일 것이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개인숭배가 발달했지만 아직 공식적인 서사가 본격적으로 되지 못한 시기였다.
이는 우리에게 앞으로 몇 년 동안 숨겨져 있던 사실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1960년 평양에서 출판된 만경대라는 책에는 김일성이 현재 북한 주장처럼 만경대가 아니라 인근 칠골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나온다.
그리고 1964년에 출간된 만경봉의 노을이라는 책에는 김형직에게 김룡호라는 입양아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김룡호와 김일성은 한 살 어린 이복형제로서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으나 어머니가 다르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나중에 북한 서적에서 김룡호에 대한 언급이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북한 역사상 김일성보다 더 중요한 인물은 없지만 그의 초기 시절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미래 연구자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상… 제 0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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