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구소련 전문학자의 "이오시프 스탈린"의 성격 및 사생활..05편 시리즈
05편. 연재
스탈린의 의심 때문에 연해주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은 중일전쟁이 터진 1937년 일본과 내통할 우려가 있다며 강제로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끌려가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수의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물론 그들은 고려인이라는 이름으로 그 곳에서도 나름대로 잘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고통은 엄청났다고 전해진다. 홍범도도 이때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가서 극장 간수로 취업하여 그곳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다고 한다. 또한 1941년 독소전쟁 발발을 틈타 캅카스의 무슬림 체첸인들이 게릴라 활동을 벌이자 1944년 봄, 체첸인들을 나치 독일군과 협력했다는 명목으로 인근의 잉구시인과 함께 몽땅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다. 당시 체첸인의 10%가 강제이주 당시 사망했다.
이들은 흐루쇼프 시기가 되어서야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캅카스인이나 고려인만이 타깃은 아니었고,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의 타타르인들도 스탈린에게 밉보여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다. 실제로 독소전쟁 시기에 소련 치하의 동유럽 국가들, 캅카스나 아시아 출신 러시아 포로들을 이용해서 독일군은 후방 관리를 맡겼고 파르티잔들을 때려잡거나 포로 감시소 경비로 쓰기도 했다. 다만 이는 스탈린의 소수민족 정책에 의한 것으로, 이전부터 소수민족에 대해서 강력한 탄압을 일삼고 러시아 중심주의로 동화정책을 강요했으며 중공업화로 지방, 특히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농촌지역이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본인이 소수민족들의 반발을 만들어놓고, 반발이 터지니깐 그걸 빌미로 해서 강제이주까지 시킨 셈이다.
스탈린의 편집증과 의심증은 나이를 먹을수록 심해졌는데 독소전쟁 개전 직전 시점에서는 히틀러가 크렘린을 매수하서 자신을 암살하려 할지 모른다는 강박에 자신을 지키는 근위병들을 가리키면서 “저놈이 쏘면 내 등 뒤에 쏠거고, 저놈이 쏘면 내 면전에다 쏠 수 있겠군”이라고 시니컬한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얘기해서 주위를 당혹케 한 적이 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더욱 심해졌다.
드미트리 셰필로프의 증언에 따르면 스탈린이 다차에서 회의를 하다가 잠시 자리를 뜰 일이 있으면 한참동안 회의장 바깥에서 회의장 안을 노려보다가 볼일을 보러 갔는데, 이는 스탈린이 자신이 자리를 뜨자마자 다들 자신을 비난하고 음해할 것이라고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죽기 직전에는 크렘린 의사 음모 사건을 조작하여 자기 주치의들을 숙청하기 시작해서, 주치의들이 고문을 당하고 있었던 관계로 발작을 일으켰는데도 손을 쓸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말년에는 의심이 너무 심해져서 자신의 충복이었던 베리야조차도 믿지 못했을 정도. 게다가 필생의 숙적인 아돌프 히틀러의 망령이 씌웠는지, 갑자기 유대인들이 음모를 꾸며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1953년부터 유대인들에 대한 체포 사건이 계속 벌어났고, 스탈린이 죽기 직전에는 "유대인 의사 음모사건"이 소련 신문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유대인 의사들이 스탈린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 이는 대숙청 당시와 비슷한 패턴이라 소련 인민들은 모두 긴장했으나, 본격적인 숙청이 이뤄지기 전에 스탈린이 사망하므로서 흐지부지되었다.
스탈린 사후 유대인 의사 음모사건이 조작이라며 혐의자를 모두 NKVD에서 풀어준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숙청 실무진인 베리야였다.
특유의 수염이 트레이드 마크로 유명하다. 수염 탈모가 있었다고 하는데, 유독 턱수염이 나이 들며 빠졌다고 하며 젊은 시절만 해도 턱수염이 많았지만 중년에 접어들며 점차 안 나기 시작했다고. 이후 중노년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콧수염만 있는 스타일이 되었다.
[참조] 실제로 갱년기 성인 남성들은 이 시기 여성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경향이 있는데 여성호르몬은 수염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이 수염이 안 나는 이유가 바로 이 여성 호르몬이 수염을 못 나게 억제하기 때문. 따라서 이 시기 중년 남성들은 수염 탈모에 걸리는 사례들이 있다.
이상… 0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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