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님께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한때 친하게 지내던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둘 다 시간강사였지요. 남편은 시인이었고 아내는 현대문학을 전공하던 국문학도였습니다. 남편은 그나마 경력이 인정되어 '겸임교수'였지만 아내는 말그대로 '시간강사'였습니다. 주말에는 두 부부와 저랑 셋이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곤 했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둘 사이의 임금 격차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루는 그 형이 재밌는 얘기를 해줬습니다. 막상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이 "교수님"이라고 부르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누가 전임강사인지 누가 시간강사인지 다 안다고 그러더군요. 하루는 학생 한명이 그러더랍니다. 수업 끝나고 등 뒤에서 "교수님!"하고 부르면서 한 학생이 쫓아오길래 등 뒤로 돌아서서 대답을 했더니 "교수님 근데 강사시죠?"하더라는 겁니다. 끼리끼리 같이 있던 학생들이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러 계단 아래로 내려 가더랍니다.
아이들이 친한 척하려고 그랬나 보다, 라고 형은 말했지만 그 표정이 참 씁쓸해보였습니다. 저는 아직 그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 말입니다.
누나는, 그러니까 형의 아내는 다음 학기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줄지 안 줄지 걱정이라고, 그렇게 되면 자기는 학원에서 알바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강사 채용 기준이 강화되어서 이제는 웬만한 대학은 석사 학위는 취급도 안 해줘서 박사 과정을 겨우 수료했는데 박사 과정은 괜히 한 것 같다고, 그 돈으로 다른 걸 할 걸, 누나는 말했습니다. 초등 6년, 중고등 6년, 학사 4년, 석사 2년, 박사 2년. 20년 공부한 사람이, 2년은 공부하지 말걸, 그런 말이었습니다. 채용 기준이 강화될 것이라고, 이제는 '박사과정수료'가 아니라 '박사과정졸업'을 대학에서 요구할 것이라고 논문을 서둘러야겠다고 고민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내분을 통해 잘 아시겠지만 저 부부의 현실이, 대학 시간 강사들의 살벌한 현장입니다. 1학점, 50분 강의 기준, 학점당 1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벌기 위해 엄청난 원서들이 몰려드는 게 대학교의 현실입니다. 빽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나이 60이 넘도록 이번 학기 잘릴까, 걱정만 하다가 쫓겨나기도 하는 살벌한 전쟁터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도무지 애를 낳을 엄두도 못 내고 여행 갈 엄두도 못 내고 겨우 생활만 'yuji'가 되는 엄혹한 삶들의 현장입니다. 탄소중심인지 탄소중립인지 그거 잘못 썼다간 당장에 생업에서 쫓겨나는 어마무시한 조직 생활이기도 합니다.
조직에 오래 계셔봐서 잘 아시겠지요. 혹시라도 지도교수나 강의 나간 대학의 누구에게 찍혀도 찍, 소리 못하고 쫓겨나는 곳이 대학 시간 강사의 세계입니다. 검사분들이야 범법을 저질러도 좌천되었다가 얼마 지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복귀하는지 모르겠으나 겸임을 하지 못하는 겸임교수든 대우 받지 못하는 대우교수든 연구할 시간이 도대체 없는 연구 교수든 그들은 모두 시간 강사이며 계약직이며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노동자들입니다.
벼랑인 사람들입니다.
목숨 걸고 '정규직 교수들의 세계'를 대신 지탱시켜주는 벼랑들입니다.
벼랑에게, 너는 왜 벼랑이냐, 라고 하면 벼랑은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욕을 멈추시길 바랍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후보님.
사람에게도 충성해야 하고 생계에게도 충성해야 하고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공부에 대한 후회에게도 충성해야 하고 태어나지 못한, 꿈도 못 꾼 자식들에게도 충성해야 하는 이 땅의 모든 시간 강사분들에 대한 그 모욕을 제발 멈추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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