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2~30대와 함께 공부를 하게 됐다.
어릴 적 하고 싶었던 것이었고, 바쁘게 산 덕분에 여유도 좀 생겼고, 사업계획도 있었기에 하게 됐었다.
함께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학력이 좋았고, 강사진 역시 대기업의 현직 또는 전직 임원들 출신이거나 회사의 대표진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
설렜다.
이곳은 '배움의 터'이니 마음 껏 시도해보고 익힐 수 있음에 설렜다.
왠지 너무나 힘든 환경 덕분에 그냥 흘려보내야만 했던 대학시절이 다시금 주어진 것 같아 설렜다.
하지만, 현실은 정말 짧은 꿈이었다.
차별과 사악함 우월의식 등등 그곳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사는 세상엔 당연히 그런 것들이 존재하고 더 컸지만, 그곳에서 내가 그런것들과 마주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나 어린아이 같이 설렜던 것일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들마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면...
암튼 그 곳에서 내가 마주한 것들은 대충 이러했다.
- 나는 학생이라는 생각에 전혀 꾸미지 않고 갔다.
1시간 반 이상을 가야 도착하는 곳이었고, 다한증이 심해 1~2리터 정도의 땀이 흐르는 사람인지라, 가벼운 운동복 차림에 백팩을 메고 책과 필기구 등 공부에 필요한 것들만을 챙겨 갔다.
얼마 후 회식자리에서 대기업 상무인 강사가 내게 말했다.
"예의가 없다"고...
난 그곳이 학교와 더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겐 그곳이 직장과 더 가까운 곳이었나 보다.
스스로를 학생이라 생각하고 공부에만 집중하기 위해 그리 하였다고 하였지만, 그를 이해시키기엔 부족했다.
- 출석은 안해도 모임엔 참석한다.
수료의 기본은 출석률이었다.
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핑계로 출석을 허위로 기재하였고, 꼼수를 썼다. (정상적이었다면 출석 기준으로 수강생의 60% 정도는 수료가 불가능 했다.)
회사가 바빠서 출석을 하지 못한다면서도 수업이 끝나는 10시 이후가 되면 강의실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을 보게 되는 장소는 술집이었다.
수 십명의 수강생들은 그렇게 기업의 임원 강사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애를 썼다.
우리끼리의 모임엔 참석자 4명...
심지어 그곳에 갑작스레 임원강사가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다시 수십명...궁금해서 임원강사를 뒤 늦게 불러봤었다. 몰랐지?
- 자신에게 연락하려면 우선 취직부터 하고 오라던 대기업 임원 강사
난 그 곳에서 철저히 날것의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생인 나 이외의 이야기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
덕분에 강사를 포함한 수많은 학생들이 나를 '백수' 정도로 알고 있었다.
어린 여학생들 중 일부는 "오빠는 언니한테 잘하세요~에휴"라며 수시로 훈계를 하기도 했다.
그래. 아직 세상물정 모르고, 어리니까...라는 마음에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사실도 아니니까 굳이...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한데, 수료를 위한 마지막 워크샵 날...
대기업 임원강사가 내게 말했다.
"넌 취직하기 전엔 나한테 연락하지 마" 등등등
그 동안 고마웠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조만간 술 한잔 사겠다. 라고 말하는 내게 한 말이다.
1박 2일이었던 워크샵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식당에서도 그는 되풀이 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과 함께, 그의 눈에 너무나 한심한 나를 바라보며...
근데, 나는 직장이 없다했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
그들은 내가 직장도 없고, 돈 벌이도 못하고, 재산도 없고, 마누라한테 빌 붙어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공부를 하러 다니겠다는 내게 마누라는 이렇게 말했었다.
"살면서 한번도 그렇게 못해봤으니 돈 걱정 말고 마음 껏 해봐요" 라고...
어떻게 오게 됐냐는 그들의 물음에, 그 이야기를 했던 것이 저런 결론을 낳았었나 보다.
내가 한 달에 100만원씩 자신들의 술값을 내주며 지냈음에도...하하
나는 지금도 5만원 정도의 용돈을 쓴다. - 모태절약
- 똥꼬의 주인은 똥꼬핥기를 기억하지 않는다
대기업 임원 강사들의 눈에 들기 위해 수 많은 이들이 똥꼬핥기를 시전하였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똥꼬에 새살이 돋아나 막힐 지경이었다.
목표는 단 하나.
그 임원이 다니는 회사로의 진출.
하하하. 꿈도 야무졌다.
똥꼬의 주인은 유유히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내가 레퍼런스 체크할테니 잘해둬라"
결국, 단 한명도 그와 함께 일하지 못했다.
- 나는 사업을 포기했다
내가 그 곳에 간 이유는 공부와 함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기 위함이었다.
2년 정도 공부와 준비를 하고, 그곳에서 괜찮은 사람을 보게 된다면 작은회사를 차려 함께 일하고 싶었다.
한데, 2년만에 그 마음은 완전히 접게됐다.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평가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희망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결정은 너무나 탁월했다.
이후에 그런 계획이나 나의 상황을 알게 된 몇 몇은 내게 다가왔지만, 난 내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원래 하던 일의 확장과 집중으로 성과는 더 좋아졌다.
덕분에 지금은 자잘한 문제를 제외하곤 별 무리 없이 살 수 있게 됐다.
1년에 좋은 차 한 대씩은 살 수 있는 정도...
- 젊은이의 패기에 대하여 생각하게 됐다
아무리 어려운 시기라고 하더라도, 젊음엔 패기가 넘쳐나야 한다.
지나간 세월에 힘들지 않았던 삶이 과연 몇이나 있으랴.
한데, 가까이서 본 젊은이의 모습은 참으로 아쉬웠다.
자꾸만 세상이,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생각해보자.
분명, 아닐 것이다.
굳이 길게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되는 이야기이니까.
"계속 그렇게 살거야?" 라고...
그리고 잘 치료 받으시고
쾌! 차! 하시길 바랍니다
화! 이! 팅!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