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년 7월 31일(음력 918년 6월 16일)
후고구려. 마진. 태봉의 황제 궁예가 죽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창업 군주 중 궁예만큼 입지전적인 인물이 있나요?
추모나 온조, 혁거세는 물론 대조영, 견훤, 왕건, 이성계 모두 다이아몬드 수저였습니다.
최하층의 삶을 살았던 흙수저 궁예가 일국의 왕이 되었고
비기득권 지역 강원도 철원을 수도로 삼고 미륵세상을 만들고자 했지만
기득권 호족들은 근본 없는 궁예를 배척하고 같은 기득권 호족인 왕건을 선택했습니다.
궁예가 호족들에게나 폭군이었지 백성들에게 폭군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던 궁예가 보리밭에서 백성들에게 맞아서 죽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오늘의 다른 한국사
-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다
- 1959년 조봉암이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