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당은 왕건이 장회무족이고 창해웅번이라 한다. 장회무족은 ‘양자강과 회수의 훌륭한 가문’ 즉 백제유민을 의미한다. 창해웅번은 ‘큰 바다의 뛰어난 (중국의) 주변지역 사람’ 즉 해상무역세력을 말하므로 역시 백제유민을 의미하는 말이다. 북송도 성종 책봉 시 “늘 백제(百濟)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길이 장회(長淮)의 겨레를 무성하게 하라.”라고 한다.북송이 고려의 국호를 모르거나 고려가 후백제와 싸웠던 것을 모르고, 백제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고 할 리는 없다. 당시의 관점에서 백제유민인 왕건이 한반도와 만주의 왕이 되었으므로 왕건과 그 후손이 다스리는 사람은 백제의 백성이 된 것이고 장회의 겨레가 된 것이다. 고려왕의 혈통이 백제유민에서 비롯된 것임을 당시에는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외교문서에 백제의 백성이라 표현하였다.
강단유사사학은 후당의 조서를 “그대는 동방[長淮]의 대족(大族)으로 큰 바다 너머 웅대한 번국[雄蕃]에서”라고 번역한다.長淮를 동방으로 해석할 수도 없고, ‘큰 바다 너머’의 ‘너머’란 말도 원문에는 없다. 중국 동해안 백제를 부정하면, 백제 유민을 부정해야 하고, 고려도 중국인이 만든 왕조가 되어 버린다. 강단유사사학은 장회무족이 한족(漢族)이라는 주장에 꼼짝도 못하고 있으며, 내국인을 상대로만 오역을 통해 사기나 치고 있다. 낙랑군이 평양이라 하면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사기꾼들이므로 속으로는 고려도 중국인의 왕조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명확한 근거가 있어도 강단유사사학을 사기꾼이 아닌 역사학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어서 병원에 가보아야 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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