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허클베리입니다.
몇 해전, 29년 지기 친구와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원래 세 친구의 여행을 계획했었으나..
한 친구가 개인사정으로 인해 불참하게 되었네요.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인 두 남자..
가족을 두고 남자들끼리 여행을 한다는 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두어 달 전 쯤..
아내들에게 미리 허락을 받고 날짜도 잡았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짐을 준비하며
학수고대 했던 여행이 시작됩니다.
트레일러 1호기.
텐트용 스트링으로 단단히 짐을 고정했습니다.
트레일러 2호기.
제 트레일러가 1호기에 비해 큰 관계로 짐을 좀 더 많이 실었습니다.
자.. 이제 출발합니다.
아빠가 떠나는 걸 본 딸아이가..
한참을 뛰어서 따라옵니다.
안보일 때 까지 손을 흔들어 주네요...
아.. 발길이 안떨어집니다ㅎㅎㅎㅎ
자전거 도로로 진입했습니다.
구름이 좀 끼긴 했지만 뽀송뽀송한 날씨입니다.
쉴 새 없이 달립니다.
자전거 도로가 곧 끝날 것 같습니다.
여름같은 봄입니다.
목이 바짝바짝 말라서 잠시 휴식!
또 달립니다. 이제 논밭만 보입니다.
길을 잘 못 들었습니다. 막다른 길..ㅠㅠ
잠시 마을로 진입해서 우회합니다.
또 10분간 휴식!! ㅋㅋㅋ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울창한 나무들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저희가 예약한 C10번 사이트로 고고!
일단 타프부터 설치하고 집을 지을 준비를 합니다.
오늘 저희가 지낼 공간의 컨셉은..
"복고...."
그래서 준비한 비장의 카드는...
오래된 터널형 텐트와 방수포 타프
올해로 40살 된 추억이 가득한 '올림픽레저' 골동품 텐트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잘 보존된 플라스틱 팩입니다.
몇 번 사용하고 나면 깨지고 갈라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타프는 코스트코 방수포입니다.
2장에 26,000이니까..
13,000원짜리 타프가 되겠군요 ㅎㅎㅎ
고가의 타프보다 태양열 차단력이 좋은 듯 합니다.
단, 무거우니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는거!
제가 타프 각을 잡는 동안에도
친구(이하 대발이)는 열심히 스뎅 폴대를 끼고 있습니다.
스뎅 폴대 라 무겁긴 하지만 내구성 하나는 끝내 줍니다.
강렬한 레드&블루 컬러.
안정감 있는 터널형 구조.
시대를 초월한 미려한 디자인.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스킨의 상태가 좋습니다.
이녀석을 보고 있으면 '캡틴 아메리카'도 생각나고 백설공주도 생각납니다.
뒷쪽은 문이 없고 창문만 있습니다.
출입문과 창을 열면 개방감이 뛰어납니다.
매트와 이불을 깔고 잠자리 세팅 완료!
40년 된 텐트와 13,000원짜리 방수포 타프의 조화..
각이 살아 있어 보이나요?^^
자.. 이제 아지트 공사가 모두 끝났으니..
단촐한 짐을 정리하고..
차디찬 맥주를 들이켜 봅니다.
최고의 안주는.. 갈증입니다.
오징어를 한마리 굽고 있는데....
까똑~ 하고 메세지가 날아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생머리를 좋아하는데..
어쨌든.. 엘레강스합니다. ^^
갑자기 딸아이가 보고싶습니다.
잠시 영상통화 타임을 가집니다.
이제 그리움은 잠시 접어 두고..
다시 하던 일을 이어 갑니다.^^
방수포 타프.. 차광 효과가 뛰어납니다.
햇볕이 안들어옵니다 ㅎㅎ
"아따.. 시원하다..."
철사 옷걸이로 만든 랜턴걸이.
잘 챙겨 왔네요 ㅎㅎ
오전에 자전거 타느라 땀도 흘렸겠다..
점심 먹으면서 보리 음료도 적당히 마셨겠다..
미니 선풍기로 살랑살랑 바람을 만들어 놓고 낮잠을 청합니다.
헉.. 눈을 뜨니 해가 서산으로 넘어갑니다.
낮잠이 너무 길었네요. ㅎㅎ
사내 둘만의 조촐한 파티가 시작됩니다.
낮에 삼겹살 맛을 봤으니..
저녁엔 목살로 스타트!
오늘의 특별 메뉴는... 등갈비입니다.
약간의 초벌 후 숯불로 마무리.
아내가 챙겨준 더덕입니다.
매콤 달콤한 향이 입 안에 확~ 돌면서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 주네요.
아내는 참 현명하다는 것을 또 한번 느낍니다.
국물이 없으면 허전하겠지요.
국물은 시원하고 어묵은 쫄깃합니다.
앞으로도 필수 메뉴가 될 듯.. ㅎㅎ
학창시절 추억들을 하나둘 꺼내며..
잔을 주거니 받거니..
낚시 가서 손에 바늘이 걸려 응급실 간 일..
고물 자전거 타고 수십KM 라이딩 갔던 일..
등수 내려갔다고 선생님께 빠따 맞았던 일..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그저 허허허허 합니다.
중학교 다닐적에 그런 일들이 있었지...
먹는 안주보다 추억 안주가 훨씬 맛있습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제가 가벼운 염통 꼬치로 마무리!
두 사내의 파티는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오늘은 잠이 참 잘 오겠습니다.
어쩌면 저는 오늘 밤 꿈 속에서..
중학생이 되어 고물 자전거 타고 낚시를 갈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주로 가족 단위의 캠퍼들이 오는 관계로..
아침 일찍부터 노는 아이들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일어나자 마자 부시시한 얼굴로..
즉석밥을 데우고..
버섯, 마늘, 고추, 양파, 파 등을 넣고 육수를 우려 냅니다.
허클베리표 특제 라면 완성!
식사를 마치고 캠핑장 주변 산책을 나섭니다.
캠핑장 뒷산은 밤나무가 우거져 있습니다.
그늘도 좋고 시원해서 맘에 쏙 듭니다.
밤나무, 전나무가 멋지게 어우러져 있네요.
딸아이가 좋아하는 애기똥풀이 보입니다.
애기똥풀만 보면 손톱에 물을 들이곤 했는데..
딸아이를 그리며..제 손톱에 물을 들입니다.
갑자기 또 딸아이가 그리워집니다.
나뭇결이 살아 있습니다.
나무 옆에서 아재포즈 인증샷^^
마른 낙엽과 밤송이들이 가득합니다.
잉.. 봄인데 벌써 밤송이가..?
나무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어 달라네요.
사내 둘이서 이러고 놉니다. ㅎㅎ
어릴 때 이런 놀이 많이 했었습니다.
"미숙이가 나를 좋아한다.. 안한다.."
저는 나뭇잎을 하나둘씩 떼어내며,
이렇게 독백을 했습니다.
"지맹이가 날 보고싶어 한다.. 안한다.."
결국은 마지막 잎이 '안한다..'ㅠㅠ
간식을 간단히 먹고 짐정리를 합니다.
목을 빼고 아빠를 간절히(?) 기다릴 딸아이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철수 준비 완료!
집으로 가는 도중
1호기 트레일러에서 가방이 털썩하고 떨어집니다.
가방을 고정한 줄이 끊어졌네요..ㅠㅠ
재정비 후 다시 출발!!!
복귀할 때는 중간에 휴식시간 없이
논스톱으로 집 근처까지 달렸습니다.
집 앞 그늘에서 "10분간 휴식!"
또 물 한병 벌컥벌컥 원샷!
대발이가 다음에 또 가자고 합니다.
"근데 우리 언제쯤 또 갈 수 있겠냐?ㅋㅋ"
짐 정리를 하고나니 딸아이가 쏘옥 안깁니다.
이로써 1박2일 동안의 남남 여행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씻고 잠자리에 드니..
이틀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그리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삼십년전 추억을 하나 둘 떠올리네요.
사진첩을 찾아 보니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수학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대발이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모자 쓴 아이가 대발이,
스포츠머리가 저입니다.
이 사진을 30여분간 들여다 보며..피식거립니다.
지금도 학창시절을 추억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잊고 지낸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밤입니다.
<벗>
- 조병화
벗은 존재의 숙소이다.
그 등불이다.
그 휴식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먼 내일에의 여행
그 저린 뜨거운 눈물이다.
그 손짓이다.
오늘 이 아타미 해변
태양의 화석처럼
우리들 모여
어제를 이야기하며 오늘을 나눈다.
그리고, 또
내일 뜬다.
- 끝 -
0/2000자